난 30년 넘게 살면서 좋은 인연을 만난다는 게 아주 큰 행운이고 흔치 않은 일이란 걸 알기에 사람과 쉽게 친해지지 않는 성격이 되어버렸다
큰애가 6월 둘째주 부터 다니던 어린이집에 같은 단지에 사는 친구가 있어서 놀이터로 자주 놀러 가자고 하는데
어제 친구랑 저녁까지 놀이터에서 놀아서 즐거웠던지 오늘 아침도 일찍 일어나서 놀이터로 놀러가자고 한다
부랴부랴 애들 아침 먹이고, 나도 준비하고 해서 애둘 데리고 놀이터로 갔는데 배가 슬슬 아프기 시작하는 거였다
'이상하다?'
다른 집 애들은 아무도 없는데 우리애들은 신나서 그네 시소 미끄럼틀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킥보드도 타보고 자전거도 타보고~~
배가 아프더니만 그건 신호였다는 걸 알아챘을 때는 이미 늦었다
" 애들아 엄마 급해! 화장실 가야할 것 같아! 집에 얼른 들어가자!!!" 하니
큰 애는 "싫어요~ "
달래는 기엔 내 시간이 너무 촉박할 것 같아
"그럼 엄마 혼자 집에 금방 다녀올게."
나온 배 밑으로 손을 받쳐서 경보로 최대한 속력을 내본다
우리 동 앞을 지나는데 옆 라인 큰애 친구 쌍둥이네 아빠가 보인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고 휙 지나친다
집에 후다닥 들어가고 화장실로 직행
볼일을 보고 나오니 놀이터에 애들만 놔두고 온 게 걱정이 된다
'혹시 큰 사고가 나진 않았을까?'
'아 그럼 어떡하지?'
불안한 마음에 또 최대한 속력을 내고 놀이터로 향한다
놀이터에 아까 인사를 건넸던 쌍둥이 아빠가 계시네?
쌍둥이들도 놀이터로 놀러나왔나??
가까이 가보니 우리 애둘과 쌍둥이 아빠만 계신다
애들이 도로로 나오길래 와봤다고 하시며 집으로 가신다
아 너무 고마움에 눈물이 ㅜㅜ
너무 좋은 이웃이다
다행히 애들은 무사하고
큰 애는 "아까 삼촌이 킥보다 타는 거 또 가르쳐줬어요." 라고 한다
이마에 땀에 송글송글 맺히고 더운지 이제 집에 가자고 하는 애둘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집으로 들어갔을 때 애들 아빠는 집에서 자고 있었다
어젯밤 애들 재우고 새벽에 같이 영화보다 잠들었는데 피곤해 할 것 같아서 일부러 자라고 놔두고 애들만 데리고 나갔었던 거였다
10시 넘어 일어난 남편에게 아까 일을 얘기하니 심드렁히다
밖에 나갔다 온 애들은 한 시간 동안 아빠랑 놀다가 아빠가 잠 드는 바람에 또 내 차지가 되었다
점심 대충 먹이고 한 애 씩 업고 재운 다음에 침대에 눕히니 이제 내 시간인가 싶었는데 얼마 안 있어 둘이 번갈아 가며 날 찾는다
결국 토닥이는 일도 내 몫이다
오늘 아침 큰 아들 어린이집 차가 도착하니 제일 먼저 둘째가 그 차에 오르려고 발을 올렸다
넌 안갈꺼야 형이 탈거야 라고 말하니
둘째는 울음을 터뜨리며 다른데로 가버린다
차량 안에 같이 타신 샘과 기사샘은 그런 둘째를 보며 마냥 웃고 계시고 큰 애도 덤덤하니 그냥 자기 자리에 앉아서 안전벨트 매는 일에만 집중한다
둘째는 형을 너무 좋아한다
집에서 낮잠을 자다가 깨서 가장 먼저 하는 말이 형이다
이제 18개월
단어 몇개 말할 수 있고 상대가 하는 말은 많이 알아먹는 것 같은데 자다깨서 하는 말이 형, 그다음엔 아빠
형과 항상 함께 있다가 혼자 지내는 낮 동안은 심심한지 자주 형을 찾는다
형이 어린이집에 안 다닐 때는 평일에도 바다며 산이며 여기저기 데리고 다녔지만
내 배도 부르고 둘째 혼자만 봐야기에 밖에 데리고 가는 일은 고작해야 마트 정도라 둘째도 심심했을 터이다
둘째는 형을 너무 좋아하는 게 책을 읽어 줄 때 나타난다
엄마 동물과 아기 동물이 나오는 책을 읽어 줄 때 큰 거는 형이란다
내가 애들 교육 중 중요하게 생각하고 고민 하는 부분이 형제간의 우애다
어떻게 하면 더 우애 있게 키울 수 있을까
아무래도 부모의 역할이 가장 크겠지...
내 2살 밑에 남동생은 나한테 누나라고 안 하는데
어렸을 때도 엄마 아빠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 정정하거나 남동생에게 뭐라고 한 적이 거의 없었다
아마 막내라 마냥 귀엽거나 아니면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쓰지 못하셨거나....
큰 애가 자기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 둘째가 와서 방해하면 밀치거나 때리거나 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둘 모두 마음이 다치지 않게 현명하게 중재을 해야하는데 늘상 둘째는 형한테 맞거나 아니면 형이 너 하지마 라고 섭섭한 말을 하면 울면서 엄마를 찾아온다
특히 배고플 때는 더 서럽나 보다
식사 준비 중에 만들고 있던 반찬을 입에 작게 넣어주면 금방 그치고 다시 형한테로 간다
요 몇일 형이 하도 몬테소리 책 중에 아빠는 아이스크림을 사러갔어요 를 읽어 달라고 하니 옆에서 같이 보던 둘째도 덩달아 형 없을 때 읽어달라고 하고 또 아이스크림이란 단어도 말하긴 하는데 명확하지 않은 그 발음이 어찌나 귀엽게 들리는지.....
형을 잘 가르쳐야 동생이 보고 배우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 아빠는 오빠를 엄하게 가르치셨나보다
열정이 떨어지셔서 그런지 밑으로 갈 수록 덜하셨지만.....
가끔 둘이 사이좋을 때는 이런 진한 표현도 과감히 하곤 한다
앞으로도 성인이 되어서도 항상 서로에게 든든한 존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들들만 있는 집이다보니
많은 육아서를 봐도 그렇고
아빠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큰 애 태어나고 몇 번은 티격태격 하기도 했지만
이젠 거의 그럴 일이 없다
우린 서로에게 너무 만족하고 있다는 뜻일까
솔직히 애들 아빠는 집안일에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편은 아니다
설겆이도 해본적은 손에 꼽힐 정도고
쓰레기도 거의 내가 버리는데(물론 집에 쓰레기가 있는 게 싫어서 거의 매일 버린다)
가끔가다 한번(30번 중에 한번) 쓰레기 버려달라고 하면
남편도 나갈 시간이 촉박하거나 정신 없을 때는 깜빡해서
현관에 둔 쓰레기를 그냥 두고 가기도 했기에.......
이젠 그냥 포기?
큰 기대 안 함
기대를 하고 상대가 바뀌기를 바라거나 억지로 바꿀려고 하면?? 그게 뜻대로 되나....집안에 불란만 일어나고 애들은 부모 싸움에 눈치 보느라 정서적으로도 안 좋을거고.....내 생각은 그렇다
남편은 가사일을 도와주지 못하니 여러 가전제품만 사준다
작년에는 빨래건조기를 사주고, 올해는 식기세척기를 사주며 하는 소리가 자기가 집안일을 못 도와주니 이런 기계가 도와주도록 하는 거라고 한다
집안일은 거의 안 도와주지만 내가 남편에 대해 불만이 없는 이유는 내가 현재 휴직 중이지만 직장과 육아를 병행 했을 때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에 더 그렇다
집에서 애 보는 게 더 힘들지만 밖에서 일해서 돈 버는 것도 그리 쉽지마는 않은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큰 이유는 애들 아빠가 애들을 너무 좋아하고 잘 챙긴다
애들 저녁 먹이고 이 닦이고, 씻기는 것 두가지를 해주는데 그 동안 나는 설거지도 하고 부엌 정리도 할 수 있다
일주일에 두어번 정도는 회식이나 지인과의 만남으로 저녁을 밖에서 먹고 들어오는데 그땐 내가 설거지며 부엌정리, 애들 양치하고 씻기는 일을 다 해야하는데 혼자 다 하려니 쉽지는 않다. 애들 잠잘 시간도 맞춰야기에 빨리 해야하니 말이다.
우리 아들들은 엄마보다 아빠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애들이 좋아하는 아빠이기 때문에 내가 남편에게 불만이 없는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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